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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 특징 인기 및 팬 서비스 역대 주장

by 뷰티#채움 202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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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야구팀 기아타이거즈 엠블럼

기아 타이거즈 특징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해태그룹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2001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년 구단이다. 공식적인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호남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 KBO 리그의 연고지 개념이 2000년부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바뀌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광주광역시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까지 포괄했었다. KBO 리그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산 12회 차지한 최다 우승 구단이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둔 이후 41년 넘게 KBO 리그 최다 우승 구단 지위를 지켜왔으며 한국시리즈 12회 진출  12회 우승이라는 불패 신화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80년대에는 해태 타이거즈로서 1986~1989,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리그 최초의 왕조를 건설하였다. 상징 색은 빨간색이며 보조 색으로는 검은색과 노란색이 주로 사용된다. 상징 동물은 호랑이인데 호랑이에게서 느껴지는 전통성과 민족 기상의 표상이 해태제과의 오랜 연륜  순수 민족 자본 바탕의 성장 배경과  어울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년부터 2013년까지는 무등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었고 2014년부터 무등  경기장 자리에 들어선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사용하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 인기

KBO 리그 최상위 전국구 인기 구단 중 하나로 한화 롯데와 함께 인기 구단으로 항상 꼽힌다. 시청률은 최근 매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원정 경기 팬 수, 설문조사 등에서도 매번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와 삼성 등은 성적이 저조할 때 한두 번쯤 타 구단에 밀려 인기 순위 3위 밖으로 밀려난 경험이 있으나 KIA의 경우 원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인기 순위 3위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다. 여느 원년 지방구단이 그렇듯이 전라도 출신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전국구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라도 밖에서도 호랑이 군단의 전성기인 해태 왕조의 호성적으로 인해 수도권, 충청도 등지에도 팬층이 상당하다. 성적이 들쭉날쭉이지만 특히 인천 SSG 랜더스필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고척 스카이돔  수도권 원정 때마다 아무리 성적이 안 나와도 구장 절반은 붉은 유니폼과 노란 막대로 뒤덮여 있다. 이를 통해 KIA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실감할 수 있다. 잠실, 문학, 고척은 물론이고 수원케이위즈파크 역시 장성호 은퇴식 때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팬 수가 많은 데다가 구단 특성상 롯데, LG 등과 함께 팬들이 열성적인 것으로도 유명해서 실제로 야구장에 가보면 응원 소리가 정말 크다. 가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홈 팬들이 KIA 팬들의 응원 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야말로 혹여나 KIA의 성적이 좋으면 팬들이 앰프 없이도 간단하게 타 구장을 본인의 홈구장처럼 만들어버리는 저력을 선보이게 된다. 프로야구가 태동한 1980년대 5번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쥔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 최초의 어린이 야구단/팬클럽 사업을 시작하는 등 철저한 팬 관리도 병행했다. 여기에 산업화 과정에서 전라도를 떠나 전국 각지로 진출한 연고지역 출신 팬들은 물론 해태의 압도적인 성적과 아우라 그리고 기라성 같은 스타들에 의해 유입된 비연고지 팬들까지 합쳐지며 전성기에는 원정에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 관중 버프를 등에 업고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의 몰락 시기와 이후 성적 침체기에는 당연히도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간 줄 알았으나 2009년 우주의 기운을 받아 몇 년 만에 상위권에 오르더니 후반기 8월에만 20승을 할 정도로 성적이 올라가자 말 그대로 다시 최절정의 인기를 보여줬다. 이렇듯 전국구 인기구단의 위상을 잃지는 않았으며 잠실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엄청난 관중 동원을 보장하고 있다. 잠실의 경우 농담 삼아 제2 홈구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이고 그 외에 고척, 문학, 수원 등 기타 수도권 구장들에서도 공격 때 엄청난 응집력으로 응원 열기가 홈 팬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22년부터 대전도 응원단이 파견되면서 대전 역시 3루 관중석에 KIA 팬들이 많이 모여 앉으며 홈 팬들 못지않게 응원한다. 2009년, 2017년, 2024년 등 우승에 도전하는 시즌의 잠실경기 정도 되면 '전광판 빼고 모두 우리 것'이라는 선수들의 호언장담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17 KIA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며 또다시 수많은 관중을 불러 모으는 중이다. 암흑기였던 2012~2014년에도 관중 동원은 꾸준히 했던 구단인데 올해는 성적까지 좋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우승이라는 호성적에 힘입어  100 관중 기록을 달성했다. 시즌 막판 두산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일  수원에서 kt와의 3연전이 마지막 일정이었을 때는 kt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위즈파크 3경기 연속 매진이자 3연전 시리즈 전체 매진을 기록한다. 아니나 다를까 2017 한국시리즈에 두산 베어스가 진출하면서 잠실에서 3~5차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최근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1~7차전 모두를 홈에서 치르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2017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양현종이 "자신들은 이번 7연전이  7연전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강력한 발언을 했는데 직접 KIA 팬들이  말을 증명해 주었다. 사실 그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전광판만 LG 것이고 나머지는  KIA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강력한 발언을  적이 있다. 관중  증가에 이은  다른 호재는 바로 팬덤 연령대의 하향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라도 출신 노년, 중년 이상 연령층들이 주로 좋아하는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압도적이 있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야구 인기가 최고조로 올라온 직후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해태의 올드 팬과 베이징 뉴비의 대거 유입의 효과를 제대로 누렸으며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팀 연령대가 낮아지고 팀 컬러가 180도 달라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10~30대 젊은 팬층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2017 시즌의 선전과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과정에서도 많은 젊은 팬층이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시즌에는 KBO의 유일한 홈구장 매진 0회라는 구단 마케팅 역사에 길이 남을 매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KIA보다 성적이 더 나쁘면서도 홈 관중석이 더 많은 롯데와 삼성이 각각 5회, 4회를 매진시키고 홈 관중석은 적지만 리그 꼴찌를 기록한 키움이 2회를 매진시킨 반면 KBO에서 KIA 혼자서만 홈을 매진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해인 2024년에는 흥행면에서 초 대박이 터졌다. 불과 25경기 만에 역대 챔필 시즌 최다 매진 기록인 10경기를 경신, 사상 최초 챔필 6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2024년 6월 6일 기준 개막 후 현재까지 32경기 중 16경기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이다. 감독 교체, 시즌 초반 1위 순항, 김도영을 필두로 한 선수 뎁스 및 성적 향상 등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원정 경기 측면에서는 역대 최초 고척 스카이돔 주중 3연전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하였다. 결국 2024년 한국프로야구 대흥행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2024년은 프로야구 관중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하고 '20대·미혼·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야구가 엄청난 흥행몰이를  해였다.  절묘한 시기에 KIA 정규시즌  한국시리즈의 통합 우승을 일궈내면서  세대교체와 신규  유입을 성공적으로 이뤘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삐끼삐끼  챌린지도 올해의 인기에 많은 도움이  것으로 보인다.

기아 타이거즈 역대 주장

해태 시절 주장에 대한 역사는 특이한 역사가 있다. 원년부터 이어진 1982~1983년 김봉연, 1984년 김준환, 1985년 김일권 이후 주장직을 폐지했던 것이다. 다만 1989년 김성한을 시작으로 1990년 김종모, 1991년 한대화, 1992년 이순철, 1995년 선동열, 1996년 김정수, 1997년 이건열, 1998년 이강철로 이어지는 상조회장이라는 직함이 있었으며 사실상의 주장 역할을 했다. 또한 군기 반장이라는 비공식적으로 선수단의 규율을 잡는 역할의 선수가 있어 왔는데 흔히 그 계보는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으로 여겨진다. 이들 중 김성한과 이순철이 대표적인 해태의 군기 반장으로 유명했다.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4년 간 주장 교체가 많이 이루어졌다. 우선 2007 시즌은 이종범이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중 극도의 부진으로 인해 6월 19일 장성호로 교체되었다. 장성호는 2008 시즌까지 주장직을 이어갔으나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2008년 10월 마무리 캠프를 앞두고 김상훈으로 교체되었다. 김상훈은 2010 시즌까지 주장직을 수행하였고 2011 시즌에는 최희섭이 주장직을 이어받았으나 당해 3월에 다시 김상훈이 주장직을 맡게 된다. 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종범이 주장을 가장 오래 했으며 김상훈도 주장을 길게 했다. 그 외에도 이적생 출신 최초로 주장을 맡은 이범호도 주장을 오래 한 편이다. 2020 시즌에는 양현종이 주장을 맡게 됐다. 투수가 주장을 맡게 된 것은 1998 시즌 이강철 이후 22년 만이다. 2021 시즌에는 팀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지완이 주장직을 맡게 됐다. 2022 시즌에는 선수단 투표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선빈이 주장으로 선임했다. 2024 시즌에는 2023 시즌 종료 후 호랑이가족한마당에서 주장 변경 소식을 전했다. 2019년 김주찬 이후 5년 만에 이적생 출신인 나성범을 주장으로 선임했다. 2025 시즌에도 작년과 같이 나성범을 주장으로 선임했다. 이는 나성범 본인의 요청으로 성사된 것. 다만 나성범이 허벅지 근육 손상으로 인해 한동안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임시 주장으로 2022 시즌 주장이었던 김선빈이 선임되었다. 뒤이어 김선빈도 부상으로 경기에서 이탈하게 되자 임시 주장으로 야수조장인 박찬호가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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