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 소개
MLB의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 구단이며 연고지는 뉴욕시 홈구장은 양키 스타디움이다. '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월드 시리즈 우승 27회 및 아메리칸 리그 우승 41회,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 21회, MVP 24회 등을 달성했다. 뉴욕 양키스는 우승 2위와 격차가 상당한 최다 기록이고 미국 4대 스포츠를 통틀어도 최다 기록이다. 월드 시리즈 준우승 역시 14회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함께 최다 기록이다. 더불어 통산 성적도 아메리칸 리그 소속 팀 중에서 2024년 기준으로 유일하게 10,000승을 달성한 팀이며 통산 승률 역시 0.569로 메이저리그 30팀 중 1위, 100+승 시즌도 무려 21 시즌으로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9 시즌보다 2배 이상 많으며 또한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도 0.582로 역대 2위고 월드 시리즈 진출 시 승률도 0.675로 높으며 역사상 유일하게 4년 연속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구단이다. 타 종목의 라이벌로는 미국의 팀 America's Team으로 유명한 미식축구의 댈러스 카우보이스 그리고 농구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과 함께 세계에서 인지도와 상품 가치가 가장 높은 스포츠 구단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화려한 성적에 걸맞게 그 인기도 세계 구급이며 양키스의 그 유명한 별명은 악의 제국 The Evil Empire이다. 더불어 투자에도 적극적인 구단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타자 쪽에서 많은 영구결번 및 명예의 전당을 배출한 구단이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와 감독은 무려 52명이나 이 팀을 거쳐갔다. YES Network와 같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메이저리그의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심지어 2012년부터 양키스란 이름으로 향수까지 시판되고 있다.
뉴욕 양키스 초창기
1901년에 아메리칸 리그를 만든 벤 존슨 회장은 원래 뉴욕에도 팀을 만들려 했으나 내셔널 리그 팀 뉴욕 자이언츠의 반대 때문에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라는 명칭으로 팀을 창단하였다. 팀 창단을 주도한 선수 존 맥그로는 구단주와 감독까지 1인 3역을 도맡아 거친 야구를 추구했지만 1902년에 리그 측이 거친 플레이를 규제함에 따라 이웃 뉴욕 자이언츠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오리올스 선수들을 몰래 세트로 그 팀에 데리고 가면서 논란이 되자 뉴욕으로 연고를 이전하는 것에 관한 투표를 진행했다. 이에 자이언츠를 뺀 총 15개 구단이 찬성하는 한편 팀 소유권도 전 뉴욕시 경찰서장 윌리엄 스티븐 디베리와 사업가 프랭크 패럴에게 팔려 뉴욕으로 연고이전해서 '뉴욕 하이랜더스'로 바꿨다. 연고이전 첫 경기이던 1903년 4월 22일 워싱턴 세네터스전에서 졌으나 다음날엔 그 팀을 만나 이겼다. 하지만 이 시기 이미 수차례 우승을 거둬 뉴욕의 터줏대감이 된 뉴욕 자이언츠의 위세를 능가하지 못했다. 여기에 돈이 없어서 선수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로 뉴욕에서 완전히 밀렸다. 홈구장이던 '힐톱 파크'조차 맨해튼과 브로드웨이 168가 사이 고지대에 나무로 급히 지었다. 이 시기에 그나마 얻은 것이 있다면 팀 명칭인데 1913년에 원래 하이랜더스였던 팀 명칭을 뉴욕 프레스 기자가 양키스라고 부르면서 오늘날의 뉴욕 양키스라는 팀 명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키스의 그 유명한 NY 로고가 탄생하고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의 원형이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홈구장도 없어서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즈를 빌려 쓰는 처지가 계속되었다. 성적도 좋지 않아서 리그 2등을 세 번 한 것이 전부였다. 그중 1904년에는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폭투 하나 때문에 2위에 그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당시 양키스의 유명 선수는 '잭 체스브로 Jack Chesbro'로 그는 20세기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41승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고 있었지만 월드시리즈 진출자가 가려지는 마지막 등판 경기에서 치명적인 폭투를 저질러 월드시리즈 진출 기회를 놓쳤다. 이후 NL의 터줏대감 뉴욕 자이언츠가 AL과의 시리즈를 거부해 버려 아예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아서 의미가 없어지긴 했다. 그러던 그들에게 제이콥 루퍼트라는 구단주와 밀러 허긴스라는 감독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뉴욕 양키스 스타플레이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만큼 모든 구단 통틀어서 가장 스타가 많은 팀이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을 대상으로 올타임 베스트 9를 짜면 당연히 압도적으로 제일 강력한 팀이며 아예 미군 대 세계연합군처럼 양키 올스타와 나머지 팀의 올스타를 짜서 가상 시합을 벌여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다. 특히 외야는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베이브 루스라는 전설적인 거성들이 버티고 있다. 팀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프랜차이즈급 야수로는 우선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 시절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등 많다. 1970년대 이후 야수로는 레지 잭슨, 돈 매팅리,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버니 윌리엄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애런 저지 등이 있다. 이들의 계보는 레프티 그로브-워렌 스판-스티브 칼튼-랜디 존슨-클레이튼 커쇼의 좌완 계보처럼 한 스타의 전성기가 끝났거나 은퇴하면 곧바로 또 다른 신예 스타가 등장해 계보를 이어 나갔다. 실제로 1920년에 양키스에 와서 전설을 쓴 베이브 루스가 양키스를 떠났던 1934년에 루 게릭이 타격 3관왕을 기록했고 게릭이 은퇴한 1939년에 조 디마지오가 첫 번째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디마지오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51년에 미키 맨틀이 데뷔했다. 그리고 맨틀의 은퇴한 해 바로 다음 해인 1969년에 서먼 먼슨이 데뷔했고 먼슨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기 2년 전인 1977년에 레지 잭슨이 양키스로 건너왔다. 그리고 잭슨이 양키스를 떠난 바로 다음 해인 1982년에 돈 매팅리가 데뷔했고 매팅리가 은퇴한 해인 1995년에 데릭 지터가 양키스에 데뷔했다. 이후 데릭 지터가 은퇴하고 2년 뒤인 2016년에 애런 저지가 데뷔하고 역대급 신인 시즌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 기록 경신 등을 이뤄낸 뒤 양키스와 장기 계약을 맺고 잔류하며 데릭 지터 이후 양키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다. 이미 성적이나 수상 경력으로 보면 매팅리보다는 위이기도 하고 장기부상 등으로 계약을 아주 말아먹지만 않는다면 양키스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남을 것은 거의 확정적이다. 양키스는 최고 재력의 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양키스의 전설들은 양키스에 처음부터 입단해서 뛰던 팜 출신의 선수들이었다. 예시를 들자면 1990년대 말에 다시금 부흥기를 이끈 양키스 코어 4와 현재 양키스를 대표하는 스타인 애런 저지는 팜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따라서 돈도 많지만 팜 시스템 역시 잘 구축되어 있는 팀으로 평가받는다. 양키스의 경우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성적이 늘 좋은 팀이기에 드래프트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팜에서 좋은 선수들이 꾸준하게 나온다는 것은 팜 시스템이 좋은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또한 FA 시장에서 큰 손이지만 특급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구매하는 동시에 유망주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편이다. 가급적 트레이드는 자제하고 돈은 더 많이 들더라도 유망주 손실이 적은 FA 영입에 올인하는 입장이다. 비싼 FA와 트레이드로 윈나우를 노리는 팀들의 참혹한 대가는 한미일 야구 통틀어 늘 있는 사례인데 양키스는 팀의 미래까지 흔드는 흔드는 도박을 자제하는 셈이다. 그 결과로 1993년부터 승률이 단 한 번도 5할로 내려간 적이 없는 엄청난 기록을 아직도 써 내려가고 있다. 투수는 타자에 비하면 확실한 약세인데 팀의 프랜차이즈로 부를 수 있는 투수로는 잭 체스브로, 웨이트 호이트, 허브 페녹, 레프티 고메즈, 레드 러핑, 화이티 포드, 론 기드리,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 등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포드와 리베라 정도를 제외하면 타자 레전드들에 비해 인지도와 성적이 떨어진다. 특히 90년대 이후 바깥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을 영입했는데 데이비드 콘과 로저 클레멘스가 1998~2000년 3연패에 일조했고 21세기 들어서도 마이크 무시나, CC 사바시아, 다나카 마사히로 등을 영입하며 계보를 이었다. 이후 명전을 노릴 수 있는 네임드로 게릿 콜이 9년 324M의 초대형 계약을 맺고 입단하며 양키스의 에이스 계보를 이어가고 있으나 타자들 중 스타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양키스의 투수는 생각보다 그렇게 레전드의 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지나치게 출중한 타자들에 가려져서 체감이 잘 안 될 뿐 양키스는 투수 육성 능력은 수준급 이상이다. 전통적으로 구장이 워낙 타자 친화적인지라 명전급 투수가 잘 안 나오는 거지 주전급 투수들은 꾸준히 배출해 왔다. 특히나 불펜 투수의 경우 혹사가 잦은 보직 특성상 대부분이 단명하긴 했지만 유독 양키스는 한 투수가 망할 때마다 다른 경쟁력 있는 투수를 배출하고 있다. 명전급 레전드 투수 한두 명을 만들기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준수한 주전급 투수들을 여럿 배출해 내는 물량으로 승부하는 육성 방침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예시는 델 린 베탄시스-채드 그린-클레이 홈즈로 이어지는 불펜 마당쇠 계보인데 베탄시스는 과도한 혹사로 단명했고 그린은 굴려지다 부상을 당했으며 로아이시가와 홈즈는 현재진행형으로 굴려지는 중인데 한 명이 부상으로 망할 때마다 차례대로 등장하여 팀 불펜 투수 계보를 이었다. 이는 양키스 구장이 악명 높은 타자구장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필연적인 전략이고 꾸준한 투수력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감안했을 때 양키스의 불펜은 가히 화수분급이고 특히 이런 육성을 지옥의 타자구장에서 해내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불펜 투수 육성의 정점이 바로 이견이 없는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