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파이리츠 초창기 및 리즈 시절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MLB 내셔널 리그 중부 지구 소속의 프로 야구단이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즈 다음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지 오래된 팀이다. 게다가 구단 자체도 MLB 내에서 손에 꼽는 스몰 마켓이다. 도시권 인구는 밀워키나 신시내티보다는 많지만 펜실베이니아 주 자체가 거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응원하고 피츠버그와 근처 펜실베이니아 서부 지역만 팬베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피츠버그를 제외하면 죄다 시골이고 피츠버그도 도시권 인구가 240만 정도다. 피츠버그 앨러게니스(Pittsburgh Alleghenys)란 이름으로 1882년 창단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리그 창립 멤버였지만 1887년 가장 먼저 탈퇴 내셔널리그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플레이어스 리그의 팀에게 주전의 대부분을 빼앗기며 1890년 23승 113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그 시즌이 끝난 후 브루클린 워즈원더스 소속이었던 2루수 루 비어바우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Pirates 해적들'이란 비아냥을 들었는데 다음 시즌인 1891년부터 이 파이러츠란 별명을 정식 구단명으로 변경하며 지금에 이른다. 해적이라는 팀명에 걸맞게 별명도 해적을 뜻하는 다른 단어인 버커니어 Buccaneers를 줄인 '벅스 Bucs'로 불린다. 국내팬들은 '해적네'라고 부른다. 1900년대 초에는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 된 최초의 5인의 하나이며 지역 출신인 호너스 와그너를 앞세워 1903년 내셔널리그 우승, 190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피츠버그의 전성기는 70년대로 당시에 윌리 스타젤, 로베르토 클레멘테 등을 앞세워 6번의 리그 지구 우승과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일궈낸다. 이후 80년대 들어 침체기를 겪으며 1986년부터 투자자 그룹 '피츠버그 어소시에이츠'가 존 W. 갈브리스 구단주로부터 팀을 샀고 그해 부임한 짐 릴랜드 감독이 리빌딩을 시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배리 본즈와 바비 보니야, 제이 벨의 킬러비 라인과 앤디 반 슬라이크를 앞세워 3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시리즈 7차전에 특히 강한데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전부 승리였다. 특히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1960년 월드시리즈가 유명한데 지고 있던 8회 말 5점을 뽑아내 역전했다가 9회 초 다시 2점을 내줘서 동점이 되었는데 9회 말 선두타자로 들어선 2루수 빌 매 저 로스키가 2구를 통타해 끝내기 홈런을 뽑아냈다.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은 140년 역사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유일이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특징
2013년 전까지 메이저리그 팬덤에서는 20년째 팀을 리빌딩하고 있는 해적네란 식으로 까였다. 특히나 성적이 잘 나오는 같은 동네 미식축구팀이자 하인스 워드가 활약했던 팀으로 유명한 피츠버그 스틸러스나 같은 동네 NHL팀 피츠버그 펭귄스와 비교하면 더 비참해진다. 그래도 2013 시즌 드디어 5할 승률과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내며 20년간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4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70년대 이후 우승이 없는 팀이라는 불명예까지 갖고 있다. 이 팀의 마지막 우승연도가 열도의 프로야구팀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우승이 없는 어느 팀이 구단 사상 첫 번째 우승을 기록한 연도이다. 게다가 우승을 이룬 기간도 첫 우승이었던 1909년과 두 번째 우승이었던 1925년 사이 16년, 세 번째 우승이었던 1960년까지 무려 35년이란 공백이 있었다. 네 번째 우승은 1971년에 이뤘고 가장 최근인 다섯 번째 우승이 1979년에 이뤄진 것이다. 이 팀은 20자리에 달하는 참담한 비밀번호 외에도 또 다른 의미의 영 좋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는데 2013년까지 11년 동안 13일의 금요일 경기에서 꼬박꼬박 지고 있다. 5할 승률을 돌파한 2013년에는 뭔가 되려는가 싶었지만 2002년 9월 13일의 마지막 승리 이후 11번째인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경기에서도 졌다. 이로서 11연패라는 메이저리그 13일의 금요일 최다 연패 기록이 작성되었다. 그리고 홈런을 잘 치지 못하는 팀으로도 알려져 있다. 단일 시즌 팀 홈런 200개를 치지 못한 유이한 팀이며 최다 기록이 1999년의 171개다. 이게 얼마나 적은 기록이냐면 미국보다 경기수가 20경기 가까이 적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22개 구단 중 171 홈런 이상을 친 적이 없는 팀은 KBO 리그의 LG 트윈스와 NPB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뿐이다. 팀 역대 홈런은 30개 구단 중 15위에 올라 있는데 밑에 팀들은 미네소타 트윈스를 제외하면 모두 1961년 이후 창단한 팀들이다. 그나마 미네소타도 20년 뒤에 창단한 팀인 데다가 2019년 307 홈런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피츠버그가 홈런이 많이 없는 이유에는 홈구장의 문제가 크다. 과거 홈구장으로 썼던 포브스 필드 Forbes Field는 좌측 111M 우측 114M 중앙 139M라는 정신 나간 크기를 자랑했으며 다음 홈구장인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 Three Rivers Stadium도 좌우측 102M 중앙 122M의 만만찮은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홈구장인 PNC 파크도 리버스 스타디움보다 살짝 짧고 중앙은 오히려 3M 더 길다. 이 때문에 홈런보다는 2루타 이상의 장타가 많이 나오는 팀이다. 사실 과거에는 7년 연속 홈런왕에 빛나는 랄프 카이너와 197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윌리 스타젤이라는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을 제외하면 역사에서 당당하게 내놓을 만한 슬러거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다 홈런 1,2위가 저 두 명이며 개인 단일 시즌 홈런 기록 7위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 리그에서 매년 나오는 40 홈런을 마지막으로 친 타자가 1973년의 윌리 스타젤이다. 팀의 NO.1 프랜차이즈 스타인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배드볼 히터였으며 단일 시즌 30 홈런 기록이 없다. MLB 홈런 리더 배리 본즈가 이 팀에서 데뷔했지만 폭발적인 홈런 생산을 한 건 자이언츠 이적 이후이다.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을 대표하던 브라이언 자일스가 4년 연속 35 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팀의 대포가 되었으나 트레이드 이후 또다시 홈런 가뭄에 빠진다. 이후 페드로 알바레즈나 조시 벨 같이 1 시즌 반짝한 선수들은 있었으나 롱런하지 못했고 2010년대를 상징하는 앤드류 맥커친과 현재 팀의 중심인 브라이언 레이놀즈도 5 툴 플레이어로 분류되며 거포 유형의 선수들은 아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한국 선수와의 관계
동국대를 졸업한 투수 김병일과 1999년 9월 계약한 것이 한국인 선수와의 첫 인연이나 김병일은 마이너리그에서 제대로 등판하지 못한 채 몇 년 지나지 않아 방출되었다. 그 뒤로 한동안 한국인 선수가 들어오지 않다가 2008년 김병현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으나 김병현은 시범 경기에서 부진한 투구 내용을 보이면서 방출되었다. 이후 2010 시즌 중반에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된 박찬호를 영입해 국내 팬들에게도 주목받았고 시즌 막판 박찬호에게 구원승 기회를 여러 번 주면서 결국 아시아인 최다승 124승을 달성하게 해 주었다. 아쉽게도 박찬호는 이 구단에서 메이저리그 경력의 종지부를 찍고 이듬해 일본 오릭스로 이적한다. 한국 팬들에겐 이 점이 크게 작용해 대인배 구단소리를 듣고 있다. 4년 뒤 2015년 강정호가 입단해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으나 음주운전 등 여러 문제로 인해 2019년 퇴단했다. 애틀랜타와의 불법 계약이 무효화된 배지환이 2018년 피츠버그와 계약했으며 2022년에 MLB에 데뷔했다. 2021년에는 양키스의 전력 구상에서 배제된 박효준이 트레이드로 합류했으며 2022 시즌 종료 후 최지만이 트레이드로 들어왔으나 박효준이 DFA 처리되었고 하루 만에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최지만은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면서 반 시즌 만에 피츠버그를 떠났다. 2023년 1월에는 심준석과 계약했지만 심준석은 고2 때부터 이어진 부상이 여전히 반복되면서 결국 2024년 7월 30일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되었다. 2025년 1월 15일 신월중 출신 2008년생 이현승이 마이너리그 계약을 바탕으로 입단했다.